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입력 2019-06-09 22:44
업데이트 2019-06-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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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車 수집광’ 백중길 금호클래식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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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때 이용한 1968년식 캐딜락.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때 이용한 1968년식 캐딜락.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1955년 8월 시발 자동차 생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60여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발전했다. 생산량에서 세계 5위에 이르며 품질 및 디자인 면에서도 강대국이 됐다. 이런 저력의 밑바닥에는 뚝심과 열정으로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온 자동차 장인들이 있었다. 그중 경기 여주시 대신면 옥촌리에 있는 ‘금호클래식카’ 백중길(71) 회장 같은 사람도 있다. 그는 1969년부터 반세기 동안 자동차 수집에 몰두해 왔다. 지난 5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수집해 온 자동차는 대통령이 타던 방탄차를 비롯해 1000여대에 이른다. 문화재로 등록된 국내 자동차 7대 중 3대를 백 회장이 갖고 있다. 그동안 모아 온 자동차는 영화, TV 드라마, CF 등 제작에 필수품이 됐다. 그의 자동차는 영화 ‘밀정’을 비롯해 TV 드라마 ‘모래시계’ 등 5000여편에 출연해 왔다. 대당 몇십만원에 불과한 대여료만으로는 20명에 가까운 직원들 인건비와 자동차 유지 관리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모두 처분하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미친 일을 하겠냐’ 싶어 손을 놓지 못한다고 한다.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꿈꾸는 백 회장으로부터 지난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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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길 금호클래식카 회장
백중길 금호클래식카 회장
-많은 비용이 드는 자동차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해방 이후 택시사업을, 6·25전쟁 후에는 운수업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핸들을 돌리며 놀 만큼 자동차와 친했다. 1965년 홍천 수송학교에서 4주 교육받고 맹호부대 공병대에 배치되면서 기술을 배우게 됐다. 제대 후 1년 동안 베트남에 기술자로 가서 번 돈으로 서울 신당동에 자동차부품 수입판매회사를 차렸다. 1973년 오일쇼크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사업이 잘됐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트레일러 운전을 하면서 자동차 튜닝 등에 견문이 넓어졌다. 귀국해 보니 1962년 정부의 자동차진흥정책 발표 이후 새나라, 코로나 등 국산 자동차들이 하나둘 도로 위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누군가는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1대, 2대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 처음에는 100대만 사 모을 생각이었다.”

-여주로 오게 된 과정은.

“‘자동차를 사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왔다. 50~70대로 금방 불어나 서울 장안동에 땅을 빌려서 주차해 놨는데 금세 차 고양 능곡에 500평을 매입해 보관해 왔다. 그런데 1990년 9월 한강둑이 터지면서 큰 피해를 봤다. 정비공 4명을 고용해 고쳤지만 귀한 차를 많이 잃었다. 2년 후 남양주 덕소로 이전했으나 그곳에서도 물난리를 겪으며 많은 차를 잃었다. 이후 안전하고 더 넓은 곳이 필요해 2014년 이곳으로 오게 됐다. 이렇게 힘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을 안 했을 것이다(웃음).”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자주 출연하는 지프차.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자주 출연하는 지프차.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대기업 회장·연예인 타던 수입차도 모아

-한눈에 봐도 귀한 차가 눈에 많이 띈다. 수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내에 문화재로 지정된 자동차가 7대 있다. 내가 일제강점기 때 소방차를 비롯해 3대를 갖고 있다. 1950년 러시아산 가즈트럭, 1955년 최무성과 그의 두 동생이 드럼통과 폐기된 지프 본체를 이용해 만든 시발택시, 1960년산 히노트럭, 1968년 신진자동차가 만든 코로나 등 지금은 구경이 쉽지 않은 차량이 많다. 막상 수집을 하다 보니, 국산차는 정비해도 쉽게 망가졌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이나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던 수입차도 모으기 시작했다. 세관에 압류된 차나, 외교관 또는 주한미군들이 타던 차들도 ‘판다’는 소문만 들으면 한걸음에 달려갔다. 판매자 변심으로 몇 년씩 걸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60년식 캐딜락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탔었던 1968년식 캐딜락은 참으로 어렵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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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공간이 부족해 벽이 없는 차고지에 보관 중인 클래식카.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실내공간이 부족해 벽이 없는 차고지에 보관 중인 클래식카.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영화사나 방송국 대여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1982년인가 홍콩영화 촬영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차를 빌려 달라고 하소연해 대여해 준 적이 있었다. 이듬해 KBS에서 3·1절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달리 빌릴 곳이 없다며 방송국 견학까지 시켜 주며 여러 번 부탁을 해 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빌려줬다. 이후 여기저기 소문나면서 임대업이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방송된 TV 시대극이나 영화 대부분에 우리 차가 출연했다.”

-모두 운행이 가능한 차인가. 유지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낡을 대로 낡아 운행하기도 힘든 차들도 많지만 대부분 정상 작동된다. 촬영현장에 빌려줄 때는 안전을 위해 밤새워 정비한다. 현장에 정비팀이 항상 대기도 한다. 사실 10만~50만원 받는 대여료만으로 유지 관리가 어렵다. 부품도 조달이 어려워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3년 전부터는 큰 건물 2개 동을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스튜디오로 빌려주면서 경제적 사정이 좀 나아졌다. 문제는 밖에서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귀한 차들도 많다는 점이다. 자식들을 밖에서 재우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만, 축구장 3개 넓이인 지금의 부지도 비좁아 어쩔 수 없다. 이 차들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고, 교육용으로 보여줄 자동차박물관을 만드는 게 마지막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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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시 대신면에 있는 금호클래식카 차고지를 지난 5월 드론으로 촬영했다. 일도엔지니어링 제공
경기 여주시 대신면에 있는 금호클래식카 차고지를 지난 5월 드론으로 촬영했다.
일도엔지니어링 제공
-오래전부터 박물관 건립을 계획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관광 목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정비하고 복원하는 데 수천만원이 드는 차들도 있다. 제대로 된 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한 대기업에서 많은 돈을 준다며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대여도 안 한다는데 어떻게 팔 수 있겠나. 그래서 제대로 복원해서 자동차박물관을 제대로 만들어 운영해 볼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규모가 규모인지라 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부천시, 강화군, 포천시 등등 여러 곳에서 유치 제의를 해 왔는데 임기제인 시장이 바뀌고 나면 모두 흐지부지됐다. 지금 이곳도 여주시에서 지역 명물로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돕겠다고 해서 왔는데 얼마 뒤 시장이 바뀌니까 없었던 얘기가 됐다.”

●“튜닝 규제 완화… 올드카 산업 활성화돼야”

-단종된 노후 자동차를 운행 가능한 상태로 보관하려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 텐데.

“우리나라 자동차 제작기술이 세계시장에서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20년 이상 된 올드카 운행을 막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후 몇 년 지나면 부품을 공급하지 않는다. 중고부품을 비싸게 사거나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 쿠바, 유럽 등에서는 올드카 가치가 날로 상승한다. 올드카에 대한 정비와 튜닝 등 다양한 부대사업들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고 관광산업과 지역경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드카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 미국 등에서는 올드카에 대해서 생산 당시 기준을 적용하거나 아예 면제를 해 준다. 오래된 차를 정비하면서 내외부를 바꿔 보려고 해도 튜닝 규제가 엄격해 어렵다. ‘추억이 깃든 차량이 명차’다. 국민 누구나 ‘클래식카’를 부담 없이 소유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2019-06-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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