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일지에 자신을 희화화한 그림 늘자 범행 결심
지난달 21일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사건을 일으킨 임모 병장은 9월 16일 전역을 앞둔 이른바 ‘말년 병장’이었다.◇ 임 병장, 희화화한 그림 늘자 범행 결심= 육군 중앙수사단이 15일 발표한 ‘GOP 총기사고 수사결과’에 따르면 임 병장은 사건 당일 오후 4시께 경계초소 순찰일지 뒷면 겉표지에 자신을 빗댄 그림들이 늘어난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순찰일지 뒷면 겉표지에는 GOP 소초원들의 특성을 묘사한 캐리커처 형식의 그림이 가득했다. 임 병장에 대해서는 엉뚱하고 어수룩한 캐릭터인 ‘스펀지밥’과 라면을 좋아하는 것을 희화화한 ‘라면전사’ 등의 그림이 있었다. ‘호빵맨’ 등 다른 소초원의 특성을 묘사한 그림도 있었지만 임 병장을 희화화한 그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임 병장은 자신을 희화한 그림을 보고 고교 때 친구들로부터 ‘왕따·금전갈취’ 등 괴롭힘을 당해 흉기로 살해하려고 마음먹었던 일과 정신과 진료 이후 ‘정신과 또라이’라는 말을 듣고 학교를 자퇴했던 일, 입대 후 일부 간부 및 동료 병사들로부터 무시나 놀림을 당하는 등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들을 회상했다고 한다.
임 병장은 그런 회상을 하면서 ‘이런 상태로 전역해 사회에 나가도 살 수가 없다’,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육군 중앙수사단은 전했다.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회피성 성격장애’ 가능성” = 군의 한 심리전문가가 육군 22사단의 의뢰를 받아 임 병장의 면담기록과 신인성검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심리분석 소견서’를 보면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스스로 관계 형성을 꺼리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임 병장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소견서는 “어릴 적 턱을 다쳐 철심·철판을 대고 고정하면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는 등 치료과정에서 나타난 외형상의 특징이나 언어적인 부정확성이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또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주변으로부터 약간의 놀림을 당한 경우에도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 채 내면적인 화남과 분노를 스스로 안고서 견디고자 노력해온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임 병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현재 자료만으로 확증하기 어렵다. 다만, 그동안 내면적으로 쌓여온 분노가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자행된 행동으로 판단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소견서는 임 병장의 정신과적 질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제한되지만 ‘회피성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임 병장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 = 임 병장이 자살 시도 직전 작성한 메모에서도 총기사건을 일으킨 당시 심리상태가 드러나 있다.
임 병장은 메모에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살인을 저지른 건 크나큰 일이지만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는 게 죽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괴로울 테니까”라며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고 어린애들이 장난삼아 개를 괴롭히거나 곤충이나 벌레를 죄의식 없이 죽이는 것처럼 자신이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 그들은 헤아리지 못했다”며 자신이 당한 고통을 호소했다.
임 병장은 수사과정에서 메모에 등장하는 ‘그들’에 대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진술했다고 중앙수사단은 전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임 병장은) ‘메모를 남긴 이유는 ‘그들’로 표현된 사람들의 행동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줬는지 공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임 병장은 자신이 근무한 GOP의 부소초장(중사)을 ‘모욕’ 등의 혐의로 지난 9일 고소했고 군 수사기관은 해당 부소초장을 불구속 수사 중이다.
또 GOP 소초원 중 6명은 임 병장을 놀리고 별명을 부르는 등의 모욕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 소속부대에서 징계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