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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영변 원자로 재가동”] 도돌이표 북핵 위기

[北 “영변 원자로 재가동”] 도돌이표 북핵 위기

입력 2013-04-03 00:00
업데이트 2013-04-0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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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비핵화 노력 다시 물거품

북한 영변의 5㎿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이 발단이 돼 지난 20년간 지속돼 온 북한 핵 위기의 초점이 결국 다시 영변으로 돌아오게 됐다.

북한은 1962년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치한 이후 핵개발에 매진해 왔으며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북한은 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1990년 영변의 5㎿ 원자로에서 약 90㎏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비밀리에 그 이상의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것으로 의심한 IAEA가 특별 사찰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해 탈퇴한 것이다.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 원자로를 대체하는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당근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합의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북·미 간의 논란 끝에 폐기된다. 당시 북한은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에게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해 2차 핵 위기가 불거진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와 미국 부시 행정부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라는 외교적 해법을 시도했지만 북한의 핵개발 의지 앞에서 결국 무용지물로 끝났다. 북한은 2005년 2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5월에는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000개를 인출하는 작업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으로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북한은 2006년 미국의 북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계좌 동결 조치와 이후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반발로 같은 해 10월 9일 플루토늄 방식의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은 2008년 6월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했으나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핵실험과 병행해 장거리 로켓도 잇달아 발사해 국제사회를 겨냥한 긴장의 수위를 높여온 북한은 결국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이 2일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따라 영변의 5㎿급 원자로를 재가동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지난 20년간의 비핵화 노력은 결국 허사가 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13-04-0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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