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들 패륜에 눈물짓는 80세 노모의 삶

양아들 패륜에 눈물짓는 80세 노모의 삶

입력 2013-05-05 00:00
업데이트 2013-05-0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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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빚 갚아달라”며 노모 전셋집에 불 질러경찰·범죄피해센터 도움으로 겨우 새둥지 마련

서울 도봉구에 사는 윤모(80) 할머니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애지중지 키웠던 양아들이 집에 불을 질러 모든 걸 잃었기 때문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윤 할머니는 처녀 때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가방 공장에 다니다가 ‘고아 형제가 있는데 데려다 키워보지 않겠느냐’는 직장 동료의 말에 솔깃해 초등학생이던 박씨 형제를 돌봤다.

홀로 쓸쓸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였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여느 집처럼 애정으로 돌봤다. 일하랴 아들 둘 키우랴 혼기가 훌쩍 지났다.

어느덧 성인이 된 두 양아들은 독립했고 각자 결혼해 새 가정도 꾸렸다.

그러나 윤 할머니는 변변한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년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잘 키웠다는 생각에 마냥 뿌듯했다.

효성이 지극한 첫째 아들은 없는 돈을 모아 할머니가 살 전세방도 마련해줬다.

그와는 달리 도통 연락이 없던 둘째 아들(54)이 4년전 할머니를 불쑥 찾아왔다. 도박에 빠져 아내와 딸과도 헤어지고 갈 곳이 없어지자 찾아온 것이다.

며칠에 한 번씩 술에 취해 윤 할머니 집에 들어와 잠만 자다 나갔다. 할머니에게 말을 붙이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더니 둘째 아들은 갑작스럽게 지난 3월23일 할머니에게 “도박빚 800만원을 갚아달라”고 요구했다. 윤 할머니가 그럴 돈이 없다고 하자 흉기로 자해하며 죽어버리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소주병을 집어던지며 위협도 했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맨발로 뛰쳐나가 이웃집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다음 날인 24일 라이터로 이불에 불을 붙였다. 불길은 순식간에 할머니의 작은 보금자리를 모두 태웠다.

둘째 아들은 현주건조물방화죄로 구속기소됐지만, 할머니는 망연자실했다. 갈 곳도 없어졌고 복구하는 데 천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집주인이 쫓아낼까 두렵기도 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도봉경찰서는 서울 북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의 송귀채 사무처장이 수소문 끝에 서울시에서 화재 피해를 본 독거노인의 집 복구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확인해 연결해줬다.

부근 교회에서 침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재도구를 마련해줬다. 센터 측은 생계비 100만원을 지원하는 한편 송 사무처장과 센터 활동가들이 잿더미가 된 집을 깨끗이 청소했다.

송 처장은 집주인이 최소한 3년간 할머니를 쫓아낼 수 없도록 약정서도 받았다.

윤 할머니는 5일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꿈만 같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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