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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전 관동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유족 찾았다

91년 전 관동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유족 찾았다

입력 2014-01-21 00:00
업데이트 2014-01-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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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칼로 만삭 부인 배 갈라” 당시 목격증언 추적

“일본 군인들이 일제히 칼을 빼 조선인 83명을 한꺼번에 죽였으며 이때 임신한 부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 부인의 배를 가를 때 배에서 어린 아기가 나왔다. 그 어린 아기까지 찔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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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측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관동(關東·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의 희생자 유족인 조민성씨가 21일 자신의 집에서 족보와 문서 등을 보이며 관련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양측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관동(關東·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의 희생자 유족인 조민성씨가 21일 자신의 집에서 족보와 문서 등을 보이며 관련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91년 전인 1923년 9월 관동(關東·간토) 조선인 대학살 때 도쿄 고토(江東)구 가메이도(龜戶) 경찰서에서 자행된 학살을 기록한 이 증언에 일치하는 희생자들의 신원과 유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21일 확인됐다.

연합뉴스가 ‘가메이도 학살 사건’의 목격 증언 기록 등을 토대로 당시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적한 결과 제주도 대정읍 인성리 출신의 조묘송(趙卯松·1891∼1923·당시 32세)과 그의 동생 조정소(趙正昭·1900∼1923·23세)·조정화(趙正化·1904∼1923·19세), 아내 문무연(文戊連·1885∼1923·38세), 아들 조태석(趙泰錫·1919∼1923·4세) 등 일가족 5명이 이 증언대로 가메이도 경찰서에서 몰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만삭의 상태에서 학살당한 부인은 바로 조묘송의 아내 문씨로 밝혀졌다.

일본 시민단체 ‘간토 학살 조선인 유골 발굴추도 모임’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씨에 따르면 이 증언 기록은 당시 가메이도 경찰서에서 조선어 통역으로 일했던 나환산(羅丸山·조선인 추정)씨가 목격했던 것으로, 일본 유학 중이던 최승만(崔承萬·작고)씨가 나씨의 목격담을 글로 남긴 것이다.

’재일본한국기독교청년회’ 이사였던 최씨는 당시 ‘재일본 관동지방이재(罹災)동포 위문반’의 일원으로 일본 각지의 조선인 학살 희생자 실태를 조사했다.

1970년 일본에서 발행된 코리아평론 잡지에 게재된 최씨의 글에는 가메이도 경찰서에서 학살된 희생자 신원으로 5명이 나와 있는데 이 중 3명이 ‘趙妙城 제주도 대정면 인성리(임신한 여인), 趙正洙(주소 上同), 趙正夏(주소 上同)’로 기록돼 있다.

최씨의 글에는 나씨가 당시 가메이도 경찰서 연무장에서 “(먼저 살해된 3명을 포함해) 86명의 조선 사람을 총과 칼로 마구 쏘고 베어 죽이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있다.

관동 대지진 때 학살된 전체 조선인 숫자를 ‘6천661명’으로 보도한 1923년 12월 5일자 상하이 독립신문에도 “가메이도 경찰서 연무장에서 기병 23연대 소위 田村에 의해 86명”이 학살된 것으로 돼 있다.

이를 토대로 신원을 추적한 결과 이들의 7촌, 8촌 혈족이 제주시 등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가족이 모두 희생됐기 때문에 직계자손이 없어 남아있는 가장 가까운 친족은 이들뿐이었다.

유족을 만나 족보를 확인한 결과 3명이 아닌 일가족 5명이 관동 조선인 학살 때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족보에는 희생된 조씨 가족 5명 모두에 ‘忌 九月一日 日本國 關東地震 犧牲 別世’(9월1일 일본국 관동지진 때 희생당함)라는 기록과 함께 ‘一九二三年 日本國 關東地震 日本國 政府 만행에 의해 학살당함’(1923년 일본국 관동지진 때 일본국 정부의 만행에 의해 학살당함)이라고 손으로 쓴 글이 적혀 있었다.

특히 조씨 유족들은 “오래전부터 집안에서 당시 문 할머니(조묘송의 부인)가 임신 중에 희생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망 사실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사무소의 제적부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제적부에는 일본 동경부에서 관동대지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일 양쪽의 증언, 기록 등에 일치하는 관동 조선인 학살사건 희생자 신원과 유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됨에 따라 그간 일본정부가 은폐하며 진상공개를 거부해온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배상 청구 소송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가메이도 조선인 학살은 다른 곳도 아닌 국가기관인 경찰서 안에서, 그것도 일본군대에 의해 자행된 국가 범죄라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가 진상을 공개하고 국가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니시자키 씨는 “증언 기록대로 한국에 희생자 유족이 있다는 것이 확인돼 감개가 무량하다”며 “희생자들의 신원 등이 확인됨에 따라 일본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 배상 청구 등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유족 조민성(62·제주시)씨는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의 행태는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그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도 지나간 과거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10만5천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조작되고 일본 사회의 내부 불만이 조선인에게 향하면서 도쿄,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 등 관동 일대에서 재일동포가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당시 한국인 피살자수는 6천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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