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오빠 못 만나더라도 생사라도 확인되면 좋겠어요”

“언니오빠 못 만나더라도 생사라도 확인되면 좋겠어요”

입력 2015-09-09 07:23
업데이트 2015-09-0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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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헤어진 언니·오빠·조카 찾는 허복희 할머니

“못 만나더라도 생사는 확인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아픈 몸을 이끌고 무작정 적십자사에 왔습니다”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를 찾은 이산가족 허복희(79) 할머니는 직원과 함께 65년 전 기억을 천천히 더듬었다.

6·25 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10월, 14살이던 허 할머니는각각 3살 터울의 언니 2명(허규녀씨, 허복순씨)과 오빠(허준씨)를 북에 두고 10살 어린 남동생과 남한으로 왔다.

세월이 흘러 이들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강원도 철원군 인목면 고향에서 보낸 10대 시절과 전쟁 직전 작은 언니가 시집가던 날 나눴던 대화는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어머니는 해방된 해에 30살 나이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전쟁이 난지 얼마 안 지나 지병으로 눈을 감으셨다.

전쟁통 속 얼떨결에 미군 소속 비행기를 타고 남동생과 서울로 온 허 할머니는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에 남한에서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 헤어지게 됐다.

병원에서 간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할머니는 3년 동안 서울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효자동의 한 보육원에서 잃어버린 동생을 찾았다.

이후 여느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허 할머니는 70대 초반까지 일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 등 바쁜 삶을 살았다.

언니오빠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지만 그들을 잊지 않으려 했다.

할머니는 “1980년대 대구에서 살 적 집으로 찾아온 동사무소 직원한테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아예 신청이 안 돼 가족들을 만날 수 없었다”며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남동생도 ‘혹시라도 이북에 있는 가족들이 잘 못 살고 있으면 마음만 아프니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 이후 가족들을 찾겠다는 생각은 가슴에 묻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상봉 내용을 다루는 뉴스를 보고 언니, 오빠, 조카들의 생사라도 확인해야겠다 싶어 이렇게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러 왔다”고 덧붙였다.

허 할머니는 “남북통일이 돼야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돼 기쁘다”며 “다시 만날 날까지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현재 생존한 이산가족 신청자는 모두 6만6천여명이다.

남북은 지난 7일부터 이틀에 걸친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내달 20일∼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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