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사이다’ 참여재판 첫날…9시간 공방 끝에 마무리

‘농약사이다’ 참여재판 첫날…9시간 공방 끝에 마무리

입력 2015-12-07 22:37
업데이트 2015-12-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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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마이크 착용한 검찰·변호인 사안마다 날선 대립

할머니 6명이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국민참여재판이 검찰과 변호인단 측의 날선 공방 끝에 재판 시작 9시간여 만에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재판은 오는 11일까지 닷새간 진행된다.

7일 오전 9시 10분 대구지방법원 제11호 법정.

이번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할 배심원단 선정을 앞두고 배심원 후보자들이 속속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 안 방청석 뒤편에는 이미 배심원 후보자 40여 명이 일렬로 줄을 길게 늘어서 신원 확인 등 절차를 밟았다.

지난달 대구지법은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선정한 배심원 후보자 300명에게 출석 통지서를 보냈으나 이날 법원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70여 명만 참석했다.

나머지는 중병, 상해, 장애 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대구지법은 예정했던 오전 11시보다 1시간여를 훌쩍 넘겨서야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할 배심원 7명과 예비 배심원 2명을 확정했다.

피고인 박모(82) 할머니의 유·무죄를 각각 자신하는 검찰과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비공개로 진행된 배심원단 선정과정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법원도 참가 후보자들을 상대로 불공정한 평결을 할 우려가 있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봤다. 또 배심원들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11호 법정 안팎에 경비 인력 등을 다수 배치해 언론 취재 등을 제한했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배심원 후보들 가운데 피고인과 개인적인 관련이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 정식 배심원단에 선정할 수 없다”며 “배심원 신원이 드러나면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어 철저한 보안 속에 선정한다”고 말했다.

오전 배심원단 선정 과정을 마친 재판부는 오후 1시 40분께 본격적인 참여재판에 들어갔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법정 안 좌·우로 나뉘어진 자리에 들어서자마자 준비해온 수사자료 뭉치 7∼8개와 사이다 빈병 등 증거물을 담은 박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검사석 바로 옆자리에 마련한 배심원석에도 배심원 9명이 전원 착석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에게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사건에 대한 재판인 만큼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달라. 법정에서 보고 듣는 증거와 증언 만으로 유·무죄를 판단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이후 푸른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 박 할머니가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지팡이를 짚고 법정으로 들어섰다. 방청석에 앉아 이를 지켜보던 박 할머니 가족 등은 울음을 터뜨렸다.

변호인석 바로 옆에 앉은 박 할머니는 주소, 나이 등을 묻는 재판부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후엔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 가쁜 숨을 내쉬기도 했고 한 손으로 머리를 짚기도 했다.

이날 검찰은 수사 기록 4천 페이지를 각종 사진과 글로 압축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준비해 변호인단을 압박했다.

자료 사진에는 피해 할머니들이 구토한 상태에서 마을회관 안에 쓰러져 있던 당시 모습과 경찰 압수수색 당시 상황 등이 담겼다.

무선 마이크를 착용한 검사 3명이 차례로 법정 중앙에 나서 배심원단을 향해 박 할머니의 범행 동기와 검·경 수사를 통해 밝혀낸 각종 범행 증거 및 사건 당일 행각, 사건 발생 이후 보인 미심쩍은 행동 등을 유기적으로 묶어 조목조목 설명했다.

변호인석 옆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이런 내용을 듣고 있던 박 할머니가 변호인단을 통해 무릎이 아프다며 법정 바닥에 앉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고 요청하자 재판부는 검찰 측의 동의를 얻어 이를 허락했다.

특히 검찰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마을회관 걸레와 두루마리 휴지에서도 메소밀 성분이 나왔다는 것을 추가 증거로 공개하면서 피고인 주요 진술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박씨가 사건 발생 직후 휴지와 걸레로 피해자들이 내뿜은 거품을 닦아줬다는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검찰은 분석 결과 걸레와 두루마리 휴지에서 메소밀 성분만 나오고 DNA는 검출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피고인이 피해자들 침을 직접 닦았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도 피해 할머니 구토물에서는 메소밀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또 행동분석 등을 통해 “옷에 묻은 농약 성분이 피해 할머니들의 구토물을 닦아 주다 묻은 것”이라는 박 할머니 진술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검찰 측 설명이 끝나자 변호인단 측은 검찰 공소 사실 등을 전면 부인하며 제시된 증거들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 앞선 주장에 대해 “구토물뿐만 아니라 피해 할머니들의 입가에 묻은 사이다를 닦아 줬더라면 걸레 등에서도 메소밀 성분이 검출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 측은 또 수사 당국이 핵심 증거 중 하나로 제시한 ‘박카스 병’에 대한 의문점을 강하게 제기했다.

앞서 수사 당국은 박 할머니 집 뒤뜰에서 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을 발견했으며, 감식 결과 병 속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마신 사이다에 든 살충제와 같은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할머니 집 안 곳곳에서 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과 제조 년월이 같은 또 다른 자양강장제 병들도 다수 발견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경찰이 유죄를 확신하는 유력증거로 내놓은 자양강장제 병 겉면에 적힌 유통기한 등 글씨가 집 안 다른 곳에서 보관 중이던 병들과 비교할 때 심하게 훼손됐다”며 “집 안에서 발견된 자양강장제 병들이 같은 시기에 구입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이 사건 당일 입었던 바지 등에서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지만 같은 날 머리에 썼던 모자와 마을회관에서 사용한 감자 칼, 사이다가 들어 있던 냉장고 손잡이 등에서는 메소밀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며 “현재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유죄를 확정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또 사건 당일 마을회관을 지나는 길로 주민 등 여러 명이 지나다녔지만 검찰이 주장한 시간대에 박 할머니가 마을회관으로 향했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밖에 박 할머니의 범행 은폐 정황이라고 검찰이 제시한 블랙박스 영상과 범행 동기 등에 대한 반박도 이어갔다.

이날 참여재판은 수차례 휴정을 거듭한 끝에 오후 8시를 넘어 마무리됐다.

검찰과 변호인단 측은 이틀째 재판에서 첫날 제시한 증거 자료 등에 대한 구체적 확인을 위해 피해 할머니 등 관련 증인 7명을 법정에 세울 계획이다.

박 할머니는 지난 7월 14일 오후 2시 43분께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서 사이다에 농약을 몰래 넣어, 이를 마신 할머니 6명 가운데 2명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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