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청교육대서 저항’ 민주화운동 첫 인정

법원 ‘삼청교육대서 저항’ 민주화운동 첫 인정

입력 2013-07-02 00:00
업데이트 2013-07-0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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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민주헌정 확립 기여”

군부독재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저항한 행위도 민주화운동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최주영 부장판사)는 이모(74)씨가 “보상금 지급신청 기각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이씨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1980년 8월 이웃과 다퉜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입소했다.

이씨는 군인들의 집단 구타가 시작되자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죄 없는 사람들을 근거도 없이 데려다가 때리는 법이 어디 있냐”고 항의했다.

그는 저항하다가 뭇매를 맞으면서도 “전두환 정권과 군 당국의 합작이냐. 이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며 굽히지 않았다.

이씨는 이 때문에 특수교육대에 편입돼 더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이씨의 항의로 구타와 단체기합이 더 심해져 다른 입소생들이 이씨를 피할 정도였다.

’순화교육’ 중 왼쪽 다리에 장애가 생긴 이씨는 10개월만에 퇴소했다.

그는 2001년 위원회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다가 민주화운동 때문에 입소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례인 삼청교육에 저항한 행위가 단순한 개인의 권리구제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출소 이후에도 피해자 모임의 대표를 맡아 삼청교육의 부당함과 인권유린을 국내외에 고발해온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직접 항거해 민주헌정 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상이를 입은 경우”라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삼청교육대 안에서 시위를 벌이다 총에 맞아 사망한 전모씨 등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생존한 피해자가 판결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법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신군부의 ‘계엄포고 13호’에 따라 1980년 8월1일부터 이듬해 1월25일까지 6만755명이 영장 없이 검거됐다. 이 가운데 3만9천742명이 순화교육 대상으로 분류돼 삼청교육대에 입소했다.

’불량배를 소탕한다’는 목적과 달리 전체 검거자의 35.9%는 전과가 없었다. 교육기간 구타 등으로 숨진 사람은 54명에 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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