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공익에 관심 멀어지는 새내기 법조인

사회정의·공익에 관심 멀어지는 새내기 법조인

입력 2013-07-21 00:00
업데이트 2013-07-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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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최상위권 로펌 선호경향 뚜렷”…법조계 아닌 ‘법조시장’

1980년대 말 미국 덴버대학교 로스쿨 학생들은 정규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단체 상근직 등 공익활동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통해 이런 현상을 포착한 콜로라도 대학교 정치학과 리처드 스토버(Richard Stover) 교수는 중·대형 로펌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학생들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석박사통합과정의 이준석씨가 지난 17일 발표한 논문은 20여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새내기 법조인’의 가치관이 변화한 것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학 교육을 거의 다 마치고 진로 선택을 앞둔 사법연수생과 로스쿨 학생은 전에 비해 판·검사보다 중·대형 로펌 변호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한 지방법원에 시보로 나와있는 사법연수생(43기) 김모씨는 “선배들은 성적 최상위권이 판사, 차상위권이 검사를 지망한 것으로 안다”며 “요즘은 상위권도 로펌으로 많이 간다”고 전했다.

이런 변화는 로스쿨 재학생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이 로펌으로 몰린다.

연세대 로스쿨 3학년 학생인 박모씨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진학한 만큼 각자 특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로펌을 선호한다”며 “성적이 좋으면 1학년 1학기가 끝난 직후 로펌으로 진로를 확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10대 대형 로펌에 취업한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가운데 서울대 로스쿨 출신은 4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와 고려대 로스쿨 출신도 각각 15% 안팎이나 됐다.

로펌이 신입 변호사를 선발할 때 학벌을 중요하게 여긴 탓에 상위권 학생들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반면 법원에서 일하는 재판연구원(로클럭) 지원 현황을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올해 선발한 로스쿨 출신 로클럭 2기 55명 가운데 서울대 로스쿨 졸업생은 단 1명에 그쳤다.

전국 법원의 로클럭 선발 시험 경쟁률도 작년 7.1대 1에서 올해 6.6대 1로 떨어져 전체적으로 인기가 시들하다.

검찰은 그나마 법원보다 상위권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올해 검사로 임용된 로스쿨 졸업생 37명 중 서울대가 10명에 달했다. 성균관대가 5명, 한양대, 연세대, 고려대 등이 각 3명 순이다.

변화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법조일원화로 판사 즉시 임용제도가 없어지면서 로펌의 매력이 커졌다. 평검사로 즉시 임용하는 검찰이 법원보다 비교적 인기가 많은 이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 전관예우 기대 감소, 지방 순환근무 부담 등도 판·검사를 기피하는 현실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사회정의 실현 의지와 공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이같은 추세가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여러 단점에 상관없이 판·검사를 지망할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이준석씨는 논문에서 “사법연수생들의 사회정의 실현 의지가 감소한 점은 분명 문제다. 미국의 선행 연구를 참조할 때 로스쿨 과정도 비슷한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서울대 로스쿨 졸업생 이모씨는 “주변 친구들이 ‘법조계’보다 ‘법조시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시장 중심의 구조에서 정의나 공익을 고수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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