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법조계는 ‘자정 무풍지대’…전관이 사건 싹쓸이

지역 법조계는 ‘자정 무풍지대’…전관이 사건 싹쓸이

입력 2015-09-10 07:15
업데이트 2015-09-1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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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임료는 일반 변호사의 최대 10배 수준…사법불신 우려

사법부에서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친분을 내세워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는 관행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최근 대법원이 형사사건 성공보수가 무효라고 판결했고, 한 대법관 후보자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재판부와 특수 연고를 갖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넘기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황제 노역’ 판결로 주목을 받은 향판(지역 법관)들이 일하는 곳에서는 개혁의 징후가 전혀 없다. 지역은 토착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이 지연과 학연으로 끈끈하게 얽힌 탓에 전관예우에 취약하다.

전관예우의 대표 형태는 선임 신고서 없이 이뤄지는 전화변론이다. 전화 한번으로 수천만원대 수임료를 받는 사례가 지역에서는 빈번하다.

그럼에도, 지방법원들은 서울중앙지법의 전관예우 방지책을 도입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재판부가 한정돼 재판부를 바꿀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역 법조인들은 전관예우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해 호남에서 발생한 ‘황제 노역’ 재판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를 자세히 보면 ‘짬짜미’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몸값이 천정부지인 이유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과 구속적부심, 보석 등 인신 구속 판단 과정에는 전관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쏠린다. 수임료가 일반 변호사보다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 빚을 지더라도 감방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영남권에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10일 “인신 구속이 우려되는 형사소송이나 소송액이 크고 내용이 복잡하면 전관 변호사가 사건을 맡을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부산 법조계에서는 올해 고위 법관 출신 인사가 합류한 법무법인이 주요 형사사건을 싹쓸이하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이 법무법인에는 올해 2월 퇴임한 전 부산고법원장이 합류했다. 그 이후 형사사건 수임건수가 급증했다. 해당 로펌 소속 변호사는 약 10명이다. 수임건수는 변호사 40여 명을 거느린 법무법인과 맞먹을 정도다.

전 고법원장이 사건을 직접 맡지 않고 변호인단에 이름만 올려 ‘후방지원’을 해주거나 후배 법관에게 전화만 해줘도 승소할 것으로 기대하는 의뢰인이 몰린 현상일 것으로 지역 사회 일각에서는 의심한다.

고액 전관 변호사를 찾는 것은 ‘돈 들어간 만큼 값을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전관이나 연고주의가 약발을 발휘했다는 소문도 그런 믿음을 굳히는 요인이다. 벌금을 내지 않아 일당을 5억원으로 환산하는 노역형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선고한 이른바 ‘황제노역’ 판결은 전관의 위력을 확인해준 대표 사례다. 담당 재판장은 호남에서만 28년 근무한 향판이었고, 변호사는 광주지방법원장 출신이었다.

전관예우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소송 당사자의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지역 변호사업계에서는 전관 변호사의 수임료가 일반 변호사의 수임료보다 적게는 3∼4배, 많게는 10배 수준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지역의 한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의 착수금이 300만원 수주인데 전관 변호사는 1천만원 이하 사건은 아예 맡지 않고 최소 2천만원은 넘어야 관심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전관에게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이유다.

전관 변호사들이 주요 사건을 독식하는데다 수임료마저 비싸 일반 변호사들마저 심각한 소외감을 느낀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온 이후 사건 수임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전관 출신들에 밀려 공정 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져 법치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대법원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최근 ‘성공 보수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판결만으로는 지역의 전관예우 및 연고주의 근절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법원의 제도 개선과 시민의 의식 개선이 병행돼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법의 재판부 재배당 제도를 부분적으로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정 기간 변호사로 일한 사람을 판사로 임용, 평생 판사로 일하게 하거나 전관 변호사들의 개업 제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 변호사법에는 ‘법관이나 검사 등으로 있다가 퇴직해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람은 퇴직 전 1년부터 퇴직한 때까지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 등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한 날로부터 1년간 수임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송 당사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울산 법조계 관계자는 “소송 의뢰인들이 막연한 기대로 전관 변호사를 찾는 관행에서 벗어나 분야별 전문 변호사를 찾는 문화를 정착하는 게 우선”이라며 “전관 변호사를 맹신하는 풍조가 없어져야 전관예우도 사라진다”고 단언했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변호인이 선임되면 되레 엄격하고 원칙대로 판결하는 사례가 많다”며 “소송 의뢰인들의 전관 변호사 선호가 줄어들면 전관예우 문제는 자연스레 누그러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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