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72년 ‘퍼펙트 우승’ NFL 전설 돈 슐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72년 ‘퍼펙트 우승’ NFL 전설 돈 슐라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5-05 07:35
업데이트 2020-05-05 07:3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4일(이하 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돈 슐라(오른쪽 앉은 이) 전 마이애미 돌핀스 감독이 2013년 8월 20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1972년 퍼펙트 우승 멤버들의 서명이 담긴 기념 티셔츠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왼쪽부터)에게 선물하는 것을 돌핀스 구단주 스티븐 로스, 우승 멤버 래리 송카 등이 지켜보고 있다.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4일(이하 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돈 슐라(오른쪽 앉은 이) 전 마이애미 돌핀스 감독이 2013년 8월 20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1972년 퍼펙트 우승 멤버들의 서명이 담긴 기념 티셔츠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왼쪽부터)에게 선물하는 것을 돌핀스 구단주 스티븐 로스, 우승 멤버 래리 송카 등이 지켜보고 있다.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미국 프로풋볼(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전설적인 감독 돈 슐라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1972년 NFL 역사에 유일하게 완벽한 우승 시나리오를 쓴 것이었다. 정규 시즌 14경기, 플레이오프 두 경기를 이긴 뒤 워싱턴 레드스킨스를 물리치고 자신의 첫 슈퍼볼 우승을 장식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2007년 시즌은 정규시즌 16전 전승이지만 슈퍼볼에서 패해 ‘퍼펙트 시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슐라는 사령탑으로 무려 33시즌, 526경기를 지휘했다. 347승으로 역대 최다 승리 지휘 기록을 갖고 있다.

돌핀스 구단은 4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오늘 아침 돈 슐라 감독이 (사우스 플로리다의)자택에서 평안히 영면했음을 알려 슬프다”며 “고인은 50년 동안 마이애미 돌핀스의 가부장이었다. 우리 프랜차이즈 구단에 승리의 순간을 가져다줬으며 구단과 우리 시 마이애미를 전국구로 키웠다”고 추모했다.

2013년에는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물리치고 2년 연속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수비수 출신답게 노네임 디펜스(Noname Defense)로 불린 막강 수비진을 구축했는데 처음 상대해본 내셔널풋볼컨퍼런스(NFC) 감독들이 돌핀스의 막강 공격진에 견줘 요즘 말로 ‘듣보잡’이라고 얕잡아 본 것에서 유래했다.

밥 그리시, 데이비드 우들리, 댄 마리노로 이어지는 좋은 쿼터백을 고르는 안목도 대단했다. 하지만 다른 슈퍼볼 우승 기회는 번번이 날려 버렸다. 해서 큰 승부에 약하다는 뒷말도 들었다. 제3회 슈퍼볼 때 자신이 지휘하던 볼티모어 콜츠가 뉴욕 제츠에 지고 말았고, 1982년과 1984년 돌아왔지만 두 번 모두 졌다. 결국 그의 슈퍼볼 우승은 두 차례로 끝났다.

하지만 슐라만큼 꾸준히 성적을 내는 사령탑도 없었다. 16차례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정규시즌 172경기를 이겨 승률 5할 이상을 올렸다. 19차례나 플레이오프에 팀을 이끌어 역대 가장 많았다. 그가 지휘한 돌핀스가 승률 5할을 밑돈 것은 1976년 6승 8패, 1988년 6승 10패 두 차례 뿐이었다.
1993년 11월 14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원정 경기에서 이글스를 누르고 통산 325승을 올리자 마이애미 돌핀스 선수들이 돈 슐라 감독을 무동 태우고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1993년 11월 14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원정 경기에서 이글스를 누르고 통산 325승을 올리자 마이애미 돌핀스 선수들이 돈 슐라 감독을 무동 태우고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상대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1970년 돌핀스로 옮기기 전까지 1963년부터 몸 담았던 볼티모어 콜츠였다. 그는 1995년 은퇴할 때까지 돌핀스에 25년을 몸담았다. 플레이오프에서 버팔로 빌스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구단은 코치진 개편을 강요했고 그가 거절한 것이 구단주의 격분을 사 전설적인 사령탑 경력이 끝났다. 1997년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슐라는 시간 관념을 바꾼 사령탑으로도 이름 높다. 1972년 퍼펙트 시즌을 달성했을 때 정규시즌 14경기에 패스 횟수가 259번 밖에 안됐고, 세 번의 플레이오프 경기에 264 순 패싱야드를 기록했다. 러닝 게임과 빼어난 수비 덕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슈퍼볼에 진출한 1984년에 2년차 쿼터백 마리노가 48차례 터치다운과 5084 패싱야드 기록을 세운 것과 견줘도 얼마나 짠물 경기를 펼쳤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리더십은 흔히 ‘올드 스쿨’로 불렸는데 야후! 스포츠는 은퇴한 뒤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매년 뽑는 올해의 스포츠 인물에 1993년 선정됐다.

선수로는 7시즌 동안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 콜츠, 레드스킨스의 디펜시브 백으로 뛰었다. 존 캐롤 대학에서 수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뒤 잠깐 고교 교사로 일하다 1951년 NFL 드래프트 9라운드 110번으로 브라운스에 입단했고 선수로서 두드러진 실적을 남기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하던 1952년 오하이오 주방위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11개월 한국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다.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는 성명을 내 고인은 “가장 위대한 감독 가운데 한 명이자 우리 게임의 역사에 기여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수많은 이들의 삶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NFL 역대 최다승 감독, 완벽한 시즌으로 팀을 이끈 유일한 인물로 슐라 감독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풋볼 인생을 살았다”고 애도했다.

마지막 NFL 경기를 지휘한 뒤 레스토랑 체인 ‘슐라스 스테이크하우스’에 이름이 붙여지는 영예도 누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