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아가씨의 무더기 연서유객작전(戀書誘客作戰)

술집아가씨의 무더기 연서유객작전(戀書誘客作戰)

입력 2010-06-04 00:00
업데이트 2010-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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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테스 200명이 5통씩 1천통

[선데이서울 73년 5월 13일호 제6권 19호 통권 제 239호]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루 피로를 씻을 수 있는 영광을 원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요?』아리따운 아가씨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듯한 이런 뜻밖의 편지를 받은 신사님들은 우선 반가움에 편지의 여주인공이 얼른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 그러나「XX살롱 O번 아무개 올림」이라고 한 편지를 잘 해석해 보면 결국 술집 아가씨가 띄운 유객(誘客) 편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서울 무교동(武橋洞) 주점가에서 발생한 신종 손님끌기 작전인데 이 사이비 연문(戀文)은 결국 웃을 수만도 없는 희비극(喜悲劇)을 불러 일으켜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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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어느 술집으로 갈까 궁리하는 술꾼들한테는 적어도 이 편지작전은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술집 아가씨가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알았을까 하는 호기심만으로도 발길이 그 편지의 출처를 향해서 옮겨질 법하다. O번 아무개라는 아가씨, 제법 정성스럽게 편지를 쓴 그 아가씨의 정체를 그려보고 확인해 보는 재미로도 심심풀이가 될 수 있다. 아니, 어떤 신사님은 생면부지의 아가씨가 자기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잠깐 유명 인사가 된 기분을 맛볼지 모른다.

그러나 이 편지가 어떻게 써지고 발송 되었는가를 알면 당장 저명인사가 된 듯한 우쭐함이 가셔질 것이다.

그 실제를 알아보자.

무교동에 있는「비어·홀」B는 4월초부터 그곳에 출근하는「호스테스」200명에게 매일 5장씩 손님을 끌기 위한 연애편지(?)를 쓰도록 지시했다.「프린트」나 「타이프」를 해서는 절대로 안되고 반드시 직접「펜」으로 쓰고 서명하라고 했다.

「호스테스」들이 각각 책임량의 편지를 써오면 발송은 업주측에서 한다.

수취인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전화번호부가 이용됐다.

큰 기업체 직원 명단 입수

상대도 모르고 자필로 써

발송책임을 맡은 그곳 지배인은 전화번호부 이외에 술깨나 마심직한 큼직한 기업체들을 찾아서 그곳의 직원 명단을 입수하여 이용한다.

그것도 한번에 한 회사 전직원에게 보내는 식이 아니라 한두명씩, 되도록이면 받는 사람이 선택된 자의 우월감 같은 것을 맛볼 수 있게 고려해서 조처했다.

따지고 보면 편지를 쓴 사람은 자기 편지를 받는 상대가 누군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다. 와서 찾으면 어물어물 넘어가서 술이나 팔면 그뿐.

마시는 측에서도 어쨌든 편지는 초면의 서먹함을 깨서 단번에 단골집 같은 기분을 갖는다.

이 B 맥주집 여급이 200명이니까 하루 1000여통의 편지가 손님끌기「메신저」로 발송됐고 이 작전은 충분히 성공했다. 평소 한산하기 짝이 없던 이 술집은 20일이 채 못되어 들어가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흥청거렸다. 다른 술집들이 가수 등 인기인 출연료로 월 평균 200~300만원씩 날리는데 이집은 연예무대 따위는 아예 신경도 안쓴다. 편지 한장…여급을 시켜 쓴 편지 한장이 충분히 이를 능가하는 전과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전이 역효과를 가져오는 때도 있다.

D대학교의 노교수 앞에도 이 편지가 날아들었다. 이 편지는 학교 교수들간에 큰 소동을 불러 일으켰다. 수취인 M교수는 정작 맥주 반「컵」만 마셔도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나는 사람이다.

직장 동료들의 오해받고

홧김에 찾아가 따지기도

평생 술·여자를 모르고 오직 학구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 온 그에게『하루 저녁 피로를 씻을 수 있는…』어쩌구의 여자편지는 그야말로 충격이 되었던 것 같다.

『술도 못하는 근엄한 노교수에게 아가씨가 있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도저히 해명할 길이 없어 고민하던 노교수는 이 문제를 젊은 교수들한테 상의했다. 이 때 나타난 게「이 편지는 M교수에게 온 게 아니라 M교수와 이름자가 같은 젊은 C교수에게 온 것일 것」이라는, 성을 잘못 써서 잘못 배달된 것이란 판단으로 기울어졌다.

젊은 C교수는 아직 미혼이고 술도 마실 줄 아니까 어느 틈에「그런 짓」을 하고 그 누를 선배인 노교수한테 끼친 것으로 낙착됐다.

이 때부터 그 젊은 C교수한테는 『피로 풀러 가자』는 놀림이 나돌았다. 단순한 놀림만이 아니었다.『연구에 몰두해야 할 청년교수가 주색잡기만 한다』는 식으로 어느 틈에 이 문제는 심각성을 띠게 됐다. 드디어 교수회의에까지 이 문제가 상정되어 젊은 교수의 견책 문제가 따져지기에 이르렀다. 선배 교수들의 눈초리는 어느덧 차가운 빛을 띠게 됐고.

피로를 풀기는 커녕 O번 아가씨가 누구인지, B라는 술집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C교수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 역시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는 동료직원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예의 편지 발신처로 돌격, 편지를 쓴 아가씨, 발송한 지배인을 상대로 대질신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물론 C교수는 결백하다는것으로 낙착됐다.

『술꾼이라면 웃어넘길 편지 한장의 파문이 이렇게 클 줄을 몰랐다』는 게 술집사람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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