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중요 순간마다 등장한 北 ‘특사 외교’>

<남북관계 중요 순간마다 등장한 北 ‘특사 외교’>

입력 2014-10-04 00:00
업데이트 2014-10-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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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최고위급 대표단을 전격적으로 보낸 것은 남북관계의 중요한 고비마다 북한이 구사해온 대남 ‘특사 외교’를 연상시킨다.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4일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등 고위 간부들의 평양 출발 소식을 신속하게 전하며 이들의 방남 목적을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가하기 위해”라고만 간단히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이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오찬회담’을 갖고 남북관계에 대한 포괄적 논의를 할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특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남북관계의 활로를 찾거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관계를 공고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형식의 방문단·사절단을 남측에 보내 당국의 입장을 전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파견한 조문 사절단이다.

당시 사절단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주축으로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실장, 맹경일 아태위 참사, 리 현 아태위 참사, 김은주 북한 국방위 ‘기술일꾼’ 등 6명으로 구성됐다.

사절단의 방남은 당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지속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지 주목받았다.

특히 당시 북한이 개성공단 억류 근로자 석방, 경의선 육로통행 제한 조치(12·1 조치) 철회 등 유화 조치를 내놓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사절단 파견까지 이뤄졌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북한 조문사절단은 “남북관계 개선의 임무를 부여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왔다”고 강조하며 국회를 방문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조문단과 함께 ‘특사’로서 역할을 하고 돌아갔다.

2007년 9월에는 김양건이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 한 달 뒤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합의한 데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북한의 ‘특사’ 외교가 정상회담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양건은 그해 11월 남측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 거제도 대우조선소 등 주요 산업현장을 시찰했다.

북한은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그해 9월 김용순 당비서를 서울로 보내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남측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특사’ 외교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북측과 비밀협상을 통해 반세기만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노무현 정부에선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로 비밀 방북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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