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해커 어나니머스, 北 ‘우리민족끼리’ 회원 명단 공개 파문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지난 4일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회원 9001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검찰 등 사정당국은 내사에 착수했지만 위법한 경로를 통해 단순 가입 사실을 파악한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일부 네티즌들은 ‘마녀사냥식’ 신상털기에 들어갔다.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지난 4일 공개한 북한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회원 계정 정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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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로 지목된 새누리당 김학송 전 의원 측은 “가입자 정보가 본인이나 비서진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면서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 김 전 의원의 이메일 주소로 가입한 사람은 한나라당 이회창 전 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의원의 이메일로도 해당 사이트에 가입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과거에 사용했던 메일 주소로도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사용했다.
공안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 관계자는 “단순 가입 사실만 가지고 처벌하기는 어렵다”면서 “가입 경로와 목적, 활동 내역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단 공개된 계정들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살펴본 뒤 혐의가 드러나면 공식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수사를 전제로 법률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단순 가입 회원에게도 불법성이 있는지 포괄적으로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당국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공개된 명단은 불법적으로 해킹한 정보인 만큼 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발견된 증거는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증거 능력이 없다”고 했다. 오영근 한양대 법학과 교수도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 목적이 아니라 단순 정보 습득을 위해 가입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등에서는 이번 해킹으로 공개된 회원에 대한 마녀사냥식 신상털기가 이어졌다. 이들은 우리민족끼리 가입자들의 이메일 주소와 이름 등을 토대로 신원을 확인한 뒤 ‘죄수’나 ‘간첩’이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과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어나니머스의 명단 공개 이후 이틀 동안에만 ‘죄수번호 ×××, ○○대학 ○○○’, ‘통합진보당 당원 ○○ 간첩신고’ 등의 글이 200건 이상 올라왔다. 해당 네티즌들은 이들을 국가정보원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다며 신고 화면을 캡처한 사진도 함께 올렸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라고 지목한 김모(39)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가 명의를 도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적이 없다. 트위터와 미니홈피 등을 캡처하며 나를 간첩이라고 부른 네티즌들에게 법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인권침해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개인의 신상정보 등을 무분별하게 유포한다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3-04-06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