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 그의 꿈]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울 엄마 참 예쁘다

[그의 삶 그의 꿈]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울 엄마 참 예쁘다

입력 2011-08-07 00:00
업데이트 2011-08-0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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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치매 어머니와 알콩달콩 살아온 김수복 씨

나에게는 한 배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형님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형님은 내가 살고 싶은 삶(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 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김수복)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분이다. 그런 형님이 얼마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알콩달콩(?) 동거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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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57세) 형님은 중편 <한줌의 도덕>으로 등단한 소설가(제2회 광남문학상)이지만 얼마 전 발간된 산문집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울 엄마 참 예쁘다》(김수복 저 / 어바웃어북 펴냄)가 나오기 전까지 번듯한 작품 하나 책으로 엮은 적 없는 이름 없는 무명작가였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인 그는 초등학교 때 가출한 이후 근 30여 년을 도시를 떠돌다 고향에 내려와 현재는 《오마이 뉴스》와 《위클리 서울》에 산문을 연재하며 3년 전부터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알콩달콩 동거를 하고 있다.

하나의 시적 울림

《울 엄마 참 예쁘다》는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형님의 책을 읽는 내내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온 90세에 가까운 노모가 남겨준 사랑과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이청준의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떠올렸다. “사는 일이 곧 한을 쌓는 일이며, 한을 쌓는 것이 곧 사는 일이다”란 작가 이청준의 말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처럼 《울 엄마 참 예쁘다》는 노모와의 동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와 사랑을 이야기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궁극의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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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기보다는 뭐랄까, 동거, 그러니까 같이 산다는 의미에서의 동거라고 생각해. 연륜이 높으신 분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야. 우리가 그토록 죽고 못 사는 공부란 것이 결국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이라든가 그분들이 발견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렇다면 노인은 살아 있는 도서관이 되는 거지. 말 한마디도 의미 없이 그냥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그런데 중증치매 상태가 되고 보니 그 말의 의미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더라고. 일종의 시적인 울림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있어. 사실 내가 어머니에게 해드리는 것은 거의 없거든. 기껏해야 밥하고 빨래하고 목욕을 시켜 드리는 정도.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게 한다는 생각도 없이 내게 주시는 게 엄청 많아. 예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어떤 아주 독창적인 소스를 끊임없이 주신다는 거지. 이를테면 아들을 오빠라고 전복시켜 놓는 그런 방식의 신선한 충격들….”

오십대 홀아비가 중증치매 노모를 모신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만 놓고 봐도 형님의 삶은 방송국의 휴먼다큐나 휴먼드라마의 좋은 소재 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블로그를 본 몇몇 언론들이 얼마간의 출연료를 전제로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등을 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님은 그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 아마도 그 마음 한쪽엔 자신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 자신의 동생과 제수씨들이 일순간 불효자로 낙인 찍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책을 낸 형님의 행동이 좀 역설적으로도 다가왔다.

“사실은 조금, 아니 많이 망설였어.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이게 온전한 생각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을 정도로 많이 갈등했지. 어머니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생각을 정리했는데, 말년에 이른 부모와의 동거가 어떻게 자식을 거듭나게 해주는가, 하는 그런 선전을 좀 하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나로 하여금 산다는 것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신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도 물론 있고. 사실 자식이 언제 어머니로부터 오빠라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겠어.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결국 말로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누나라든가 이모, 삼촌, 고모 이런 호칭들이 무슨 절대적 근거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거든. 다만 그렇게 부르자, 하는 약속일 뿐.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오빠라고 불러. 그럼 그 약속이 깨진 것인데, 그런데 이때의 약속위반이 묘한 느낌을 준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 같은 말이라도 뒤집어서 보면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단 말이거든. 페이소스라고나 할까. 이런 울림에서 얻어지는 어떤 경이로움, 이런 것들을 선전하고 싶었다는 게 아마 책을 낸 동기라고나 할까, 그럴 것 같아.”

어머니는 중증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듯하다가도 목욕을 시키기 위해 옷을 벗자고 하면 너무도 분명하게, 본능적 기억을 재생해(열여덟 계집아이로 돌아가) 아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런 어머니와 오십대 홀아비 아들의 동거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이기 전에 치열한 다툼이고, 인내가 아니면 이겨낼 수 없는 고행과도 같은 시간들일 것이다. 누구는 치매전문병원으로 가라고 권하기도 하고, 병원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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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건 뭐, 사람마다 인생관이 다르니까 뭐라고 할 말은 없는데. 내 경우만을 놓고 보자면 치매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은근히 신나는 사업이라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보거든. 이렇게도 신나는 사업을 왜 마다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은 있어. 물론 그렇다고 노상 신나는 생활인 것은 아니고. 이건 뭐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웃음과 눈물이 섞여지는 현장, 그게 인생이라는 마당일 테니까. 어쨌든 나는 이런 생활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 아쉽게도 부모가 안 계시다면 어디서 빌려서라도 함께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 그런 점에서 노인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지금 요양원 같은 격리시설을 자꾸 늘리기보다 세대와 세대를, 다름과 다름이 섞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어떤 묘한 정책을 개발해 내는 게 노인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아닐지 생각해 보기도 해.”

꾸준한 독서에서 얻은 당당함과 자신감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다보면 마음먹은 것처럼 살아지지가 않는 것이 삶이요 인생일 것이다. 지금 형님이 가고 있는 길도 이와 다를 바 없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음, 그것은 책이라기보다 한 편의 짤막한 산문이었는데. 삼십대 후반 무렵에 내가 자살을 아주 심각하게,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고려한 적이 있었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런데 어느 날 용산역 앞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책을 아무 생각 없이 주워들게 됐어. 그게 무슨 문학전문 잡지였는데, 거기에 문순태 선생이 쓴 자신의 소설 입문 동기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어.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뭐랄까, 글쓰기 속에 엄청난 보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것을 읽고 나서 아하,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얼마 뒤부터 소설 쓰기 연습을 시작했지. 그 이전까지는 내가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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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문득 그에게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고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자신감이지. 용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당당함도 물론 빼놓을 수 없어. 그 어떤 권력이나 자본 앞에서도 무릎 꿇거나 비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당당함, 이것은 꾸준한 독서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 물론 실용서 위주의 독서라면 정반대의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용서란 대개 어떤 규칙과 원칙 같은 것들을 강조하는데, 규칙과 원칙이란 영구적이지가 않고, 시대에 따라 달라진단 말이거든. 사실 나는 초등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학력 때문에 열등감 가져본 적은 딱 한 번, 학력미달로 군대에서 안 받아준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때 딱 한 번이었어. 정말로 나는 그때 군대에 다녀오고 싶었거든. 배고픈 시절 밥 먹고 잠자고 운동하고 이런저런 온갖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런데 안 받아주더라고. 지금도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아무 말도 못해. 심지어 방위병도 아니고 보충병이었으니까. 보충병, 참 내 기가 막혀서, 나같이 병치레 한 번 없이 튼튼하고 유식한 남자를 학력 없다고 안 받아주다니.”

형님이 어머니와 살고 있는 시골집은 마당이 넓은 집이다. 그들에게 마당은 숲이고, 철따라 온갖 먹을거리를 충분히 만들어 내놓는 보물창고이기도 하며, 차 한 잔 하며 거니는 사색의 장소이기도 하다. 셀 수 없이 많은 화초며, 먹을거리들이 빈틈없이 꽉 차 있는 모습 속에서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형님의 얼굴을 살피며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니 갑자기 아무것도 드시질 않아 읍내의 종합병원으로 모신 지 20여 일 되어 간다고 말했다. 이름이 효자병동인 그곳에는 효자는 없다는 농담과 함께. 노인 전문 병원인 그곳에는 치매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전문 간병인들이 있어 어머니도 그들이 돌보지만 형님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저녁 수발만은 당신의 손으로직접하고 있다.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오빠를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이다.

형님과 함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초췌해져 버린 어머니에게 저녁 수발을 한 시간여에 걸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형님은 꿈이 있는가요?”라고 물었다. 형님은 수줍은 말투로 “꿈이야 많지. 이룰 수 있는 꿈이 어디 꿈이래? 그건 목표지!”한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무안해하며 웃으니, 형님도 덩달아 웃는다.

형님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내가 이글을 쓰고 있을 즈음, 어머니의 부고를 듣게 됐다. 이제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명복을 빈다.

글_ 박종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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